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벌일 때부터 사람들은 두 나라가 원래 같은 소비에트 연방에 있던 나라라는 점을 상기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이 두 나라는 완전히 다르다. 언어는 물론, 문화도 다르다. 우크라이나가 서방 지향적이라면 러시아는 러시아 고유의 문화와 역사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나라다.

1. 키예프 루스는 우리 역사
러시아의 기원은 현재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러시아어로 키예프)에서 시작한다. 당시 이 지역에 살던 수많은 민족들은 강력한 바이킹의 진출에 이들을 지배세력으로 한 나라 건설에 나선다. 루스란 말도 바이킹 민족과 관련돼 있다. 그렇게 키예프를 중심으로 작은 나라들의 연합체가 이 지역에서 시작했다.
이 연합체 중 현재 모스크바는 작은 나라에 불과했다. 어쨌든 그렇게 시작했고 루스 최초로 기독교 개종에 나선 임금도 블라디미르였다. 키예프 루스의 국왕이었다. 러시아 황제는 늘 이 블라디미르를 연결고리로 비잔틴제국으로까지 자신의 계보를 확장했다. 차르란 이름도 마찬가지다.
2. 중세 이후 갈라진 땅
하지만 러시아를 만든 중요한 요소는 몽골의 수백년간 지배가 결정적이었다. 차르란 존재를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인 러시아 지배 체제가 이 때 만들어졌다. 심지어 행정용어 중 많은 단어가 몽골어에서 기원할 정도다.
반면 우크라이나 지역은 비잔틴 제국, 오스만 제국, 폴란드-리투아니아 제국으로 갈가리 찢겨 나갔다. 특히 폴란드-리투아니아 제국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으며 이 지역은 서유럽과 비슷한 사고방식을 갖게 됐다.
그러던 것이 러시아가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점점 확장하면서 마침내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도 실력을 인정받게 된 계기가 오스만투르크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다. 이후 러시아는 표트르 대제를 통해 루스에서 그리스식 발음인 러시아로 국호도 바꾸면서 유럽 국가로 변모한다.
3. 우크라이나의 중요성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강대해지면서 다시 키예프를 중심으로 대다수가 영토로 편입된다. 우크라이나는 흑토 지대인 데다 광물이 많다. 러시아가 혁명 이전까지 식량과 광물 공급지역으로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그런 우크라이나를 러시아가 한 차례 포기한 적이 있다. 물론, 러시아 혁명 이후 우크라이나를 독립시켰지만 역시 소비에트연방 산하에 뒀다.
이후 우크라이나에는 각종 산업 시설과 함께 핵무기까지 배치할 정도로 귀하게 여겼다. 문제는 소련 붕괴 이후였다. 오랫동안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을 꿈꿨다. 핵무기까지 해체해 러시아에 갖다주더라도 독립을 원했다.
문제는 러시아는 그런 우크라이나의 중요성 때문에 소련 붕괴 이후 한참 힘이 약할 때는 어려웠지만 꾸준히 영향력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미국과 서유럽이 러시아를 따돌리고 자신들의 안보동맹체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확대하면서 갈등을 키우기 시작했다. 결국 그 갈등이 전쟁으로 터진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동상이몽이다. 이를 해소하기란 참 어려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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