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은 이야기다. 하지만 역사이기도 하다. 그 시대상을 반영하고 사람들의 모습도 인물로 압축시켜 극적으로 보여준다. 사건들 역시 현실 역사 속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곤 한다. 특히 사실 반영을 우선하는 문학 사조가 리얼리즘, 즉 사실주의다.
1970~90년대 대한민국 문학계는 다시 한 번 사실주의 광풍이 불어닥쳤다. 군사독재와 싸우는 지식인으로서 문학가들은 소설과 시, 희곡으로 사실주의를 실천하며 많은 이들에게 역사의 정의를 실현하고자 했다. 황석영, 조정래 등이 대표적인 사실주의 문학가들이라 할 수 있다.

조정래 작가가 역사 현장에 직접 가보고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거대한 역사의 물결을 소설에 담아낸다면 황석영 작가는 굿이나 마당극에도 관심이 많아 여러 장르를 활용하는 이야기꾼이다. 그런데 황석영 작가는 월남전 참전부터 광주민주화운동에 이어 방북까지 여러 역사 현장에 직접 참여했다. 마치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헤밍웨이처럼 그는 현장을 누비곤 했다.
그의 2000년대 작품인 <강남몽>은 강남의 역사를 소설 한 권에 담았다. 그런데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해방 직전부터 1990년대까지 살아낸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사람들이 겪는 주요 경험들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다.

1943년생으로 만주에서 태어난 저자는 해방 후 평양 외가에 있다가 1947년 가족들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영등포에 정착했다고 한다. 한국전쟁을 거쳐 고교 시절 4.19를 겪었고 대학은 중퇴했으며 지방을 전전하며 일용직 생활을 했고 승려로 사찰에 들어간 적도 있다. 이후 해병대 입대와 함께 월남전에 참전했다.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인생사다.
그 이후에도 민주화 운동, 통일 운동 등 다양한 역사 사건에 휘말리며 감옥 생활까지 하게 된다. 필자의 대학 시절 그의 작품은 조정래 작가의 작품과 함께 반드시 읽어봐야 할 문학 작품들 중 하나였다. 가장 인상 깊은 소설은 <오래된 정원>과 <손님>이었다. 그 이후 <장길산> 같은 대하소설도 읽어봤지만 정말 대단한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강남몽>은 강남에서 성공한 인물과 강남에서 일하는 사람, 그리고 강남을 주 무대로 활동한 배후 권력자 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들이 겪은 가난과 설움은 각기 다른 보상을 통해 새롭게 거듭난다. 그 성공은 대체로 공평해 보인다.
한국인들의 처절한 고생과 죄의식, 그리고 망각 등도 보여준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시대에 대한 것들이다. 그 시대에 고생하면서 생존은 물론, 성공을 거둔 이들은 묘한 죄의식과 함께 망각을 통해 삶을 이어간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아왔듯이 말이다.

황석영 작가는 '강남몽'의 말미에 수록한 저자의 글에서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우리네 인형극 '꼭두각시 놀음'을 떠올렸다고 썼다.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최첨단 공간인 강남을 배경으로 알 수 없는 세력이 움직이는 대로 살아가게 되는 인형들이 주인공이란 설명이다.
주요 인물들은 결국 시대 배경을 온전히 벗어나질 못한다. 공권력, 사회 갈등, 전쟁, 개발 등 여러 사건들이 씨줄이 되고 날줄이 돼 이 인물들을 조정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고생은 물론, 죄의식과 망각 모두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한다. 가난과 굶주림이란 고생이 싫어 선택한 일제 주구 노릇을 하다 해방 후 미군정에 철저히 충성하면서 자신의 친일행적에 죄의식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내 권력과 부에 취해 망각해 버리고 만다. 욕망의 노예가 된다.
우리 현대사는 드라마와 영화로도 단편적이게나마 그려졌다. 아니면 조정래 같은 위대한 작가의 손으로 거대한 역사의 물결을 담은 대하소설로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남몽'은 그 어떤 글이나 영상보다 더 집약적이되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우리 근현대사를 잘 표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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