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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언론

영락제를 통해 본 시진핑의 정치 전략의 허(虛)와 실(實)

by 통일동이 2024.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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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락제

 

 명나라 3대 황제 영락제는 매력적인 역사 인물이다. 조카를 쫓아내고 황위에 오른 영락제는 우리나라 조선왕조 7대 임금으로 조카 단종을 쫓아내고 임금의 자리에 오른 세조 수양대군과 비슷하다. 무엇보다 영락제는 오늘날의 중국 정치 중심 베이징이 있게 만든 주인공이다. 

 

 그로 인해 지금 중국 수도는 베이징으로 굳어졌고 중국인들은 무수히 많은 문화유산을 얻`었다. 자금성과 만리장성이 대표적이다. 만리장성 역시 진시황제가 처음 시작했지만 오늘날의 모습으로 완성시킨 것은 영락제의 업적이다. 대외 관계도 확장을 표방했다. 몽골을 향해 직접 친히 나서 정벌하러 세 차례나 갔고 베트남을 공격해 잠시 지배하기도 했다. 환관 정화를 시켜서 대규모 함대로 동남아, 인도, 아프리카 동쪽 해안에 이르기까지 조공 무역을 진행하게 했다. 하지만 실익은 없었다. 

 

 만리장성을 돌로 쌓는 작업을 완성시킨 것과 베이징에 자금성을 건설하고 운하를 정비하는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겉으론 화려했고 후대에 엄청난 문화유산을 남겼으니 이름은 길이 남겼다. 하지만 이러한 정복 사업과 토목건축으로 인해 백성들의 고통은 상당했다고 한다. 

중국의 패권주의는 강력해 보이지만 질적인 성장을 통해 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시진핑은 영락제와 비슷한 면모가 보인다. 조카를 내쫓아 최고 지도자에 오른 것은 아니지만 지방에서부터 고생을 극심하게 했고 어린 시절에는 문화대혁명으로 위기를 겪기도 했다. 영락제 역시 권력의 무서움을 보고 커왔다. 명의 건국자이자 아버지인 홍무제 주원장이 맏아들과 손자의 황위 계승을 위해 공신까지 모두 척살하는 걸 지켜봤고 조카가 하나씩 자신의 형제들이 지니고 있던 군사와 번왕의 지위를 박탈하고 제거해버리는 걸 보며 광인인 척 연기를 해야 하기도 했다. 

 

 결국 자신을 겨냥한 조카의 칼이 날아들어올 위기에 처하자 분연히 일어나 내전을 거쳐 황위를 차지한 것이다. 시진핑 역시 중국 공산당 정부의 복잡한 권력구조 속에서 쥐죽은 듯이 지내다가 권력을 잡은 후에는 하나씩 정적과 그 세력을 정리해 나가더니 마침내 건국의 아버지인 마오쩌뚱에 버금가는 지위를 차지했다. 

 

 특히 영락제처럼 해외를 향한 강력한 진출 움직임도 눈길을 끈다. 일대일로부터 시작해 미국과의 갈등에도 정면대결 양상을 보인 것은 중국 공산당 정부 수립 이후 처음이다. 미국과 전쟁을 벌인 한국전쟁 시기도 있었으나 늘 미국을 조심하곤 했던 게 중국이었다. 물론, 시진핑 정부 역시 미국과 아예 척을 지진 않고 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대외적으로는 강력한 중국의 위상을 떨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게 엿보인다. 

 

 문제는 현재 중국의 경기 침체와 부동산 위기 등이 심각해 보인다는 점이다. 더구나 패권주의에 가까운 모습에 내부적으로는 민주주의가 아닌, 독재로만 흐르는 이러한 행태는 장기적으로 중국 국익에 얼마나 도움이 될 지 알 수 없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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