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에서 언론사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한계는 어느 정도일까?
20세기 내내 주류 언론은 명멸을 거쳐왔지만 우리 역사에서 가장 뚜렷이 기억할 만한 주류 언론은 동아일보와 한국일보였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조선일보가 새로운 주류 언론으로 급부상했다. 바로 전두환 정권과의 밀월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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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전두환’이라 했던 조선일보를 돌아보다 - 미디어오늘
“분단의 비극이 해소되는 날까지 현실적으로 이곳, 이땅의 궁극적 운명은 군의 어깨에 달려 있다. 어떤 논리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우리의 오늘의 생존의 조건이고 상황이다”1979년 12월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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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과의 결탁은 조선일보에 확실히 새로운 권력을 선사했다. 이와 함께 1990년대 들어 삼성그룹의 힘이 강해지면서 재벌 계열 언론사들의 힘도 커졌다. 특히 중앙일보는 당시 섹션지면을 새롭게 추가하면서 지면 양 경쟁을 주도하는 혁신 바람과 함께 새로운 파워를 키워나갔다. 이에 따라 이제 주류 언론을 부를 때에 '조중동'이란 단어가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 됐다. 맨 앞이 조선일보, 그 다음이 중앙일보란 의미다.
그런데 난데없이 1990년대 중반 문민정부가 들어서고난 뒤, 조선일보가 새롭게 조명한 정치인이 있었으니 바로 이승만이었다. 여기에는 특별한 배경이 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고 조선왕조 왕가 출신으로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해방 후 귀국해 당시 국회의원이 투표하는 간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오른 인물이다. 이후 6.25 전쟁이 터졌다. 독재를 원하던 그에 맞선 국회와 갈등을 빚던 중 헌법을 바꿔 국민이 직접 선거하는 직선제로 바꾸고는 다시 대통령에 올랐다. 그의 실정은 잇달았다. 일단 반민특위 해체 등 민족정기 바로세우기에 정면으로 거스르고 자신의 수족이 된 친일파 출신 관료와 군경을 보호하기 위한 정치적 술수에 따른 반민족적 행태를 보였다. 전쟁 전 겨우 토지분배를 통해 민심을 다독였으나 전쟁 발발과 동시에 무능과 부패의 극치를 달렸다. 여기에 국회가 반발했으나 자신에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을 간첩으로 몰아 모조리 제거해 버렸다. 피난 온 임시수도 부산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승만은 이후 독재에 연연하다 4.19 혁명으로 대통령 직을 내려놓고 하야했다. 이후 하와이로 건너가 여생을 거기서 살다 죽었다.
조선일보는 해방 전 친일에 적극 앞장 섰던 과오가 있다. 해방 후 전쟁을 거치면서 나름 중앙지로 민주화 운동에 나선 기자들이나 편집국장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는 확실히 정권에 밀착하더니 1990년대부터 새로운 언론 권력으로 성장했다. 그러던 것이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당시 민자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역사 바로 세우기 등 민족 정기 사업을 내세우자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모르겠다.
김영삼 정부는 당시 조선총독부 청사인 당시 국립중앙박물관(구 중앙청사)을 철거하고 친일잔재인 국민학교란 명칭을 초등학교로 바꾸는 등 해방 이전의 일제 잔재를 없애는 데 앞장섰다. 무엇보다 조선일보 등 기득권에 이러한 움직임은 위험하게 보였을 것이다.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세우기는 5.16과 12.12를 군사반란으로, 5.18 광주사태를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하며 그동안 군사독재 기득권 세력의 이념 틀을 깨부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보수의 킹메이커라 자부하던 조선일보로서는 이념전쟁의 공격을 받게 된 셈이다. 받아쳐야 할 새로운 이념과 인물이 필요했다.
과연 이러한 역사 바로세우기에 대응할 수 있는 보수 인물이 누가 있을까. 행적도 행적이지만 이념 결집에 필수적인 친미반공사상의 인물이어야 했다. 또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활동한 인물이어야 했다. 박정희는 이미 김영삼 정부에서 군사반란자로 규정된 인물이라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전쟁 전 남로당 경력이나 일본군 장교로 활동한 이력 역시 부담스럽다. 결국 해외에서 독립운동에 나섰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기도 한 이승만이 가장 적합할 수밖에 없다. 독재가 걸리긴 하지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란 점이 상쇄하고도 남을 만하다.
결국 이승만과 나라세우기란 이름의 전시도 기획한다. 1995년이었다. 해방 후 50주년이 되던 해였다. 안병훈 당시 조선일보 편집인이 주도했다. 그의 인터뷰에 흥미로운 내용이 등장한다.
https://www.chosun.com/opinion/2023/11/13/ZJJB6UPROZCXHCEKYOJZHJMAJ4/
建國 부정 세력의 왜곡에 맞서 ‘진짜 이승만’ 보여주니 국민이 울었다
建國 부정 세력의 왜곡에 맞서 진짜 이승만 보여주니 국민이 울었다 김윤덕이 만난 사람 이승만과 나라 세우기 전시로 기념관 건립 초석 다진 안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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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김영삼 대통령이 홀대했다는 인상을 주는 인터뷰 내용이다. 반면, 김대중 대통령은 모든 걸 품은 대인배로 언급한다. 이승만을 띄우는 조선일보가 못마땅했던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모습이 나온 셈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유연한 인물이었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하나회 숙청, 금융실명제 전격 시행 등 승부사 자질이 빼어난 인물이다. 그가 전두환과 노태우마저 감옥에 보낸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그의 역사 바로세우기 청산 대상에서 이승만은 빠져 있었던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이승만 재조명은 과연 한국인의 의식구조에서 뭘 건드렸던 것일까. 다음 편에 더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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