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화는 민족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중국의 공식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이다. 대만으로 쫓겨간 장개석이 이끄는 자유중국 역시 중화민국이 공식 명칭이다. 여기서 중화는 세계의 가운데에 있는 화하족, 즉 한족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이러한 한족 개념은 제국주의와 함께 들어왔다. 그전까지 중화는 민족과 관련이 없었다. 명이 망하고 청이 들어서자 조선의 지배층은 자신들이야말로 중화문명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주나라 이래로 동아시아 대륙에서 일본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나라가 유학을 기반으로 한 이념과 제도를 이어왔다. 특히 한국과 베트남은 유교 질서의 자장 안에서 충실히 스스로를 소중화라 자처해 왔다. 자신들의 정체성과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중국으로부터 책봉 형식의 왕권 정당성을 확보하고 중국 외 다른 나라와 교류하면서 스스로를 높였다. 그런 식으로 평화를 유지해 왔다. 2000년 이상 지속된 이러한 사대와 교린이 제국주의 열강의 공격을 받아 당시 청이 무너지면서 질서가 파괴됐다.
제국주의만 아니었어도...
종주권이라고 하는데 중원 대륙의 여러 왕조가 주변 나라들에 대한 보호와 임금 책봉권 등의 권리를 의미하지만 실질적으로 해당 나라의 독자성은 보장하던 개념이었다. 그러던 것이 점점 제국주의 열강이 19세기 이후 당시 중원대륙을 지배하던 청 황실의 영역 주변으로 몰려들면서 위협받기 시작했다.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들에 대한 러시아의 영역 침범과 지배부터 연해주 강탈이 대표적이다.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반도를 침략하면서 청에 복속돼 있던 당시 베트남도 침략했다. 영국은 청의 주요 항구에 조차지역을 설정해 놓았고 광동성에 있는 주룽반도를 점령해 홍콩을 식민지로 만들었을 뿐이다. 일본도 근대화 이전에 청에 사대하던 류큐를 침략해 자신들의 식민지로 삼았다.
조선은 미국과 프랑스의 침략을 격퇴하면서 한껏 고양된 분위기 속에서 서양 세력의 통상 요구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러다 일본의 무력 위협으로 개항을 하게 됐다. 청은 조선에 대해 종주권을 주장하고 싶었지만 여러 서구 열강의 통상 및 서구식 외교관계 수립에 아무런 제재도 가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동아시아는 과거의 국제 질서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게 된다. 그 다음부터는 약육강식과 다름없는 상황이 됐다. 청은 기존의 영토도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 빠져들었다. 일본은 재빠르게 근대화에 나서 서양과 비슷한 수준으로 무력을 키우고 서구 보통 국가의 경제 체제를 갖춰 나가기 시작한다. 일본은 러시아의 위협에 가장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현재 중국이 도련선을 설정하고 미국의 무력 접근을 봉쇄하고자 했듯이 일본은 한반도와 만주를 점령해 러시아의 남하를 막고자 했다. 제법 외교 전략도 수립해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극도로 싫어하고 막고자 했던 영국과 동맹까지 맺었다. 청과의 전쟁 끝에 조선에 대한 권리와 함께 요동반도와 대만을 점령하게 된 일본은 이러한 영국과 역시 러시아 남하를 경계하던 미국의 도움으로 전쟁을 벌여 동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데 성공한다. 특히 일본은 이 두 전쟁을 거치면서 완전히 제국주의 국가의 길로 들어선다.
문제는 중국이었다. 이러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에 중국 내에서는 민족주의가 발호하기 시작한다. 한족의 민족주의였다. 중국의 대표적인 혁명가인 쑨원은 '멸만흥한(만주족의 청을 멸망시키고 한족 나라를 세우자)'의 기치를 내걸고 무력 혁명에 나서기도 했다. 심지어 만주와 티베트 등을 포기해서라도 한족만의 나라를 건설하자고 주장했다. 이후 많은 중국 혁명가는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21세기 사대와 교린은 과연 부활할 수 있을까?
그러던 중국이 지금과 같은 배타적 민족주의로 흐르기 시작한 것은 일본의 침략 덕분이었다. 중국 혁명가 대부분은 일본을 배워야 할 선진 근대화 국가로 생각했다. 하지만 일본의 만주 침략에 이어 본토에 대한 무차별 침공으로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항일이 제일의 국시가 됐다. 여기에 한족뿐만 아니라 여러 민족의 영토에 대한 집착도 생겨났다.
결국 청이 이룩한 광대한 영토를 고스란히 차지해야 한다는 것으로 목표가 바뀌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과 구 소련에 대한 배타적인 영토와 영해 주장으로 이어졌다.
현재 중국은 집권 초 도움을 받았던 소수민족의 한족화에 매진하고 있다. 중국을 하나로 묶고 패권 확대에 골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아시아 여러 나라는 미국과 손잡고 여기에 맞서는 형국이다. 무척 거대한 패권국가의 탄생에 여러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그리고 남아시아 국가들마저 중국의 패권에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중국 역시 주변 나라들과 모두 갈등관계다. 요즘이야 러시아, 북한 등과 관계가 좋아 보이지만 이들 나라 역시 중국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미국은 그동안 경제 협력 관계와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무력 전개로 신경 쓰지 못했던 중국의 패권국 도약을 견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중국의 빠른 추월에 난감해 하고 있기도 하다. 중국의 패권이 어느 정도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전쟁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다.
사대와 교린이라는 과거의 국제 질서는 중원 대륙과 그 주변에서 펼쳐지던 수많은 전쟁과 갈등을 가장 효과적으로 잠재울 수 있었던 제도였다. 제국주의 침략 이후 무너진 이 질서 속 정신을 되살릴 수 있다면 어리석은 전쟁의 길은 피해 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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