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고 군사강국은 없다?
이제 세계 최고 군사강국의 개념은 사라졌다. 미국의 몰락과 함께. 미국이 몰락한 건 아니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지상군 파병은 전혀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러시아가 결국 우크라이나 침공에 나선 것 역시 이러한 미국의 세력 약화를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통해 확연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러시아 역시 쉽게 우크라이나를 점령할 거라 믿었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제 확실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군사력을 행사하진 못해도 어느 한 나라의 승리를 막아낼 정도의 힘은 여전히 갖고 있음을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여줬다.
냉전 이후 힘의 균형은 자연스레 이뤄지고 있는 듯하다. 사실 냉전 종식 후 소련은 해체되고 러시아는 급격히 힘을 잃어가던 중이었다. 반면, 미국은 전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적도 있다. 2000년대까지의 이야기다.
서구와 러시아의 균형을 깰 수 있는 나라는?
러시아는 제국 시절부터 평야로 이뤄진 자신들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확장을 거듭했다. 험준한 산처럼 자연의 장벽이 존재하지 않는 러시아 땅의 특성상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확장을 거듭해야 하는 숙명에 처한 셈이다. 러시아는 키이우 공국에서 출발했지만 평야 지대로 쳐들어온 몽골군에 멸망하고 만다. 그보다 규모가 작은 모스크바 공국도 몽골의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했다. 그러던 모스크바 공국이 점차 힘을 키워 몽골 세력을 쫓아내고 유럽에서 가장 광대한 영토를 지닌 전통적으로 자신의 주변국들이 이탈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애를 써왔다. 특히 조지아나 우크라이나는 특별 관리대상국이었다. 그래서 둘 다 러시아가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이다. 조지아 침공은 나름 성공적이었지만 우크라이나 침공은 확실히 달랐다.
미국은 냉전 이후 걸프전을 통해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제대로 응징했다. 무엇보다 미국의 최첨단 무기는 전 세계 여러 나라들을 주눅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1990년의 일이다. 이후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동유럽 세르비아를 응징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슬로 협정을 성사시키며 오랜 숙원이던 중동평화마저 완벽하게 성사시키는 듯했다. 물론, 이후 이스라엘 내 우익세력의 총탄에 라빈 총리가 암살당하고 팔레스타인 내 강경파인 하마스가 득세하면서 평화는 물 건너가고 말았다. 그런 와중에 2001년 미국은 알카에다라는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세력에게 테러로 일본의 진주만 침공 이후 첫 본토 침공을 당했다. 당시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10년 이상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전투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보다 더 많은 군비를 쏟아내면서 미국도 힘과 돈 모두 바닥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두 강대국의 이러한 과정 속에서 새로운 강국이 나타났다. 바로 중국이다. 세계 최대 공장 보유에 제조업 신흥 강국 중국은 미국과 러시아가 전쟁에 몰두하는 와중에 차근차근 부를 쌓았다. 만약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국이 어느 한 쪽 편을 든다면 편을 든 세력이 단번에 승리할 것이다. 양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역할을 중국이 대신할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갖게 된 셈이다.
결국 죽어나가는 러-우크라 젊은이들
중국은 현재 러시아는 물론, 우크라이나도 쉽게 손을 들어주지 않고 있다. 비록 미국의 강력한 견제를 받고 있음에도 중국은 외교에서 균형 감각을 잘 유지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느 세력이 확고한 승리를 거두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죽어나가는 것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젊은이들일뿐이다.
전쟁이 끝난다 해도 두 나라 모두 쉽게 전쟁 이전으로 회복하긴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러시아가 더 불리해 보인다. 이미 많은 걸 잃었다. 우크라이나에도 쩔쩔 매는 데다 핵무기도 쉽사리 쓸 수 없어 재래식 전투만 이어가는 러시아를 이제 무서워할 나라는 없다. 다만, 경계하는 나라들은 엄청 많아졌다. 러시아의 의도와 달리 러시아를 고립시킬 군사 동맹은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만약 러시아가 승리를 거둔다 해도 더 이상 러시아 편을 들어줄 나라는 극소수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크라이나는 어떨까. 우크라이나도 문제점이 많아 보인다. 군대 외에 무장을 갖춘 민병대가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다. 젊은 층이 대거 전쟁에서 목숨을 잃으면서 경제 재건에도 속도를 내기 힘들 것이다. 이는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결국,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얻을 게 없는 전쟁에 낭비만 한 셈이다.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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