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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국제사

일본은 제 2의 메이지 유신을 기대한다!

by 통일동이 2024.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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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가장 먼저 근대화한 아시아 국가가 됐다.

 일본의 근대화가 성공한 까닭은?

 19세기는 제국주의와 식민지 시대였다. 유럽 열강은 자본주의와 기술혁신을 바탕으로 곳곳에서 영토 확장과 식민지 확보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있던 여러 나라와 민족들은 이들 유럽 열강의 침략에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 위기에 처했다. 

 

 특히 18세기까지만 해도 무기 체계와 생산력, 그리고 과학기술에서 비슷한 수준이던 유럽과 비 유럽 국가들 간 격차가 19세기 들어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일본 역시 에도막부를 거치면서 네덜란드를 제외하고 쇄국정책으로 일관하는 중이었다. 그런 일본 앞바다에 미국 군함이 개항과 무역을 요구하러 왔다. 막부 집권층은 이미 네덜란드를 통해 서양의 과학기술 발전과 무기 체계를 잘 알고 있었다. 1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일본은 결국 개항하게 된다.

 

 다행히 일본은 네덜란드를 통해 세계정세의 변화를 파악하고 있었다. 조선이나 청과 달리 중앙집권체제를 제대로 확립하고 있지 못한 일본은 지방 무신정권인 조슈번과 사쓰마번을 중심으로 강력한 근대화가 가능했다. 지방에서부터 시작한 이러한 혁신이 마침내 에도 막부를 무너뜨리고 새로이 근대화된 일본으로 거듭날 메이지 유신의 성공으로 이어진다. 일본은 근대화를 거치면서 모든 걸 뜯어고친다. 옷부터 교육제도, 그리고 머리 모양까지 서양식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일본은 반성보다 도약을 향하고 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탈아입구'를 국가 슬로건으로 체택한다. 아시아를 벗어나 구미로 향한다는 의미인데 스스로를 아시아 국가가 아니라 유럽 국가임을 선언할 정도였다. 빠르고 급속한 근대화와 함께 일본은 러시아를 견제하고 자국을 방어하기 위한 식민지 확보에 나선다. 그렇게 아시아 여러 나라를 침략하면서 몹쓸 짓을 한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군국주의가 아니라 경제제일주의로 국가 노선을 변경한다. 물론, 자신들이 침략하고 착취한 아시아 여러 나라들을 향한 제대로 된

반성과 사죄는 없는 상태였다. 

 

 냉전이 시작되고 다행스럽게도 미국이 군대도 주둔시키면서 일본은 마음놓고 국가 재정을 몽땅 교육과 경제 성장에 쏟을 수 있었다. 그런 일본이 다시 미국의 견제를 받게 된 것이 1980년대다. 일본 경제 규모는 미국에 육박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일본 덕분에 커져가고 있었다. 그런 견제 속에 일본의 경제가 거품붕괴를 겪고 미국의 강요로 인한 고환율 정책으로 정체되기 시작한다. 

 

 20년 이상 이어진 이러한 일본 경제 정체를 일본 스스로는 '잃어버린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은 다시 한번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그 중심에는 일본 우익의 거두인 기시 노부스케를 외할아버지로 둔 아베 신조가 있었다.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된다고 할 무렵, 일본 정부는 아베 신조를 중심으로 교육 개혁을 시작한다. 바로 IB교육이다. 과거 근대화 시절에나 가능했을 법한 암기 교육이나 객관식 시험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비판적인 사고를 키우고 글을 통해 정리할 수 있는 창의적인 인재를 키워내는 IB교육으로 혁신적인 일본을 건설하고자 한 것이다. 

 

 다만, 이러한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서는 교육기법뿐만 아니라 성숙한 민주주의와 올바른 역사 인식, 그리고 인간에 대한 배려가 바탕이 돼야 함에도 일본은 스스로의 역사를 부정하고 있는 데다 비판적이지 못한 획일적인 사회 분위기가 여전한 상황이라 솔직히 회의적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이미 10년 이상 IB교육을 공교육에 도입해왔고 그동안의 대학 입시제도 역시 확 바꿔버렸다.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28123

 대한민국은 다시 조선처럼 뒤처질까?

 19세기 청과 조선은 자체적으로 근대화를 통한 국력배양과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노력에 나섰다. 그러나 일본은 간발의 차로 근대화에 성공한 후, 군대를 동원하고 영국 등 서구 열강과의 동맹을 통해 동아시아에서 침략 활동에 나섰다. 조선과 대만을 식민지로 삼고 만주를 공략해 역시 식민지화했다. 

 

 서구 제국주의 침략은 단연코 비판받아야 한다. 일본 제국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의 지배를 받으면서 조선은 왜곡된 근대화 과정을 거쳐야 했다. IB 교육의 핵심은 스스로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 목적이다. 조선시대까지 인재를 뽑는 시험인 과거제도를 보면 문제를 제시하고 하루 종일 이 문제를 놓고 자신의 의견을 써내는 것이었다. 한 역사학자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조선시대 과거에 합격한 관료들의 수준은 오늘날 서울대 수석, 하버드대 수석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고. 우리는 IB교육 시스템을 이미 갖춰놓고 있던 상태였다. 

 

 하지만 일본 메이지 유신 이후의 교육제도는 빠르게 서구 기술을 습득하고 비판 정신은 거세한 도구로서의 인간 육성에 목적을 뒀다. 식민지 조선의 교육도 마찬가지였지만 수준은 더 낮게 강요했다. 객관식 시험을 통해 학생들의 학력을 빠르게 서열화하고 수치화 하는 시스템으로 서구 문물을 빠르게 흡수했는지를 가려내는 데 중점을 뒀던 일본식 교육 제도에서 식민지 조선인들이 높은 학문 성취를 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비판적 사고를 억압하고 식민지인답게 시키는 일만 잘하는 인재에 머물러야 했다. 

 

 해방 후에도 이러한 교육은 답습하고 말았다. 일본은 스스로 과학기술 교육을 서구를 뛰어넘는 데 중점을 두면서 점차 그 성과를 드러내 노벨상 수상자를 냈지만 대한민국은 결코 노벨상 수상자를 내지 못한 교육에 머물렀다. 미국 유학파들이 그토록 많은 데도 대한민국 교육은 여전히 일제시대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그나마 학교에서의 토론을 활성화하고 성적에 따른 서열화보다 창의적인 인재를 키워내자는 내부 반성도 있었으나 여전히 대학 서열화와 학력 서열화 등 경쟁지향적인 교육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진짜 경쟁은 암기를 더 많이 하고 문제를 더 빠르게 푸는 게 아니라 온전히 이해하고 이를 활용해 창의적인 활동을 얼마나 폭넓고 깊게 펼칠 수 있느냐에 중점을 둬야 한다. 일본이 움직이고 있다. 새로운 시대 전환기가 온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교육이 바뀌지 않고 여전히 과거에만 머물러 있다면 일본이 걸어놓은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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