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쟁은 인류의 유산이다!
어떤 역사 답사 중 있었던 일이다. 답사를 이끌던 분께서 임진왜란부터 민주화운동까지 우리 조상들의 한결같은 의로운 활동과 참여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던 중 임진왜란 당시 당쟁을 언급했다. 당쟁 중인 두 정치세력의 인물이 각기 다른 보고를 하는 바람에 전쟁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우리 조상들이 일본에게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다. 이런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실제 역사는 어땠을까.
조선은 고려와 달리 성리학자들이 주도해서 건설한 계획국가이자 왕권의 일방적인 독주를 막아낼 훌륭한 관료들을 갖춘 나라였다. 당연히 이들 관료는 오늘날의 정당처럼 붕당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붕당 간 경쟁은 오늘날의 민주주의 정치체제처럼 견제와 균형을 조선 정치에 가미한다.
이는 오늘날의 모든 나라와 마찬가지다. 정치는 각자 이루고자 하는 바를 위해 경쟁하고 견제하면서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는 걸 막게 된다. 이런 게 아예 없게 되면 오히려 독재나 독주로 흐르면서 나라는 파탄 나고 만다. 조선 후기 붕당정치가 세도정치로 흐르면서 실제 조선은 붕괴의 길로 들어선다.
다시 임진왜란 이야기로 돌아오면 당시 조선 조정은 서인과 동인으로 양당 정치 세력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당시 임금인 선조는 나중에 무능한 군주로 역사에 기록되지만 붕당정치를 이용하는 데에는 달인에 가까웠다. 최초의 서얼 출신 임금이어서인지 그런 정무 감각은 뛰어났다. 동시에 질투심도 심했다는 게 문제였지만.
일본은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한 이후 명과 인도를 정복하겠다는 헛된 욕망을 드러낸다. 이에 일본 정부의 압력을 받은 대마도 군주가 조선에 와서 일본이 침략할 것이라고 경고해준다. 조선 조정은 이를 검증하고자 통신사를 일본에 파견한다. 동인 김성일과 서인 황윤길이 그들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보고를 하게 된다. 황윤길은 곧 일본의 침략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김성일은 그러지 않을 거라고 맞선다.
결국 일본은 침략했으나 조선 조정은 아예 넋놓고 있었던 게 아니다. 이미 군사 대비 태세를 어느 정도 갖췄으며 이순신 등을 전라좌수사로 임명하며 유능한 군인들을 배치했다. 성곽 보수도 어느 정도 이뤄졌다. 문제는 일본의 군사력이었다. 이 무렵 일본은 이미 쌀 생산량에서 조선을 앞지른 데다 병력 규모도 상당했다. 더구나 전국시대를 거치며 전투 경험마저 풍부했다. 200년 이상 여진족과의 전투 외에 정규군 간 전투 경험은 전무한 조선으로서는 불운이었을 뿐이다. 이나마도 준비할 수 있었던 건 당쟁 덕분이다. 서로 견제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판단을 관철시키느라 애썼기에 조선은 결국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정쟁이 폭력으로 흐른다면?
서두가 길었다. 정쟁은 어디에서나 존재했다. 일본도 육군과 해군의 파벌 싸움이 육군의 승리로 귀결되면서 전쟁은 패망으로 이어졌다. 중국의 여러 왕조들도 결국 견제하는 세력 없이 일방적인 하나의 정치 세력이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잡으면 끝장나곤 했다.
정쟁은 이처럼 사라지면 한 나라의 멸망으로까지 귀결된다. 왜 정쟁을 자꾸만 평가절하하는지 모르겠다. 정말 식민사관 때문일까. 사실 세도정치 이후 조선의 지배 계층 일부가 일제강점기에 일본과 손잡고 떵떵거리며 잘 살았다. 그들이 조선의 붕당정치가 조선에 해악을 끼쳤다는 식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데 앞장섰을 수도 있다. 식민사관 역시 일본이 조선은 일본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결정론적인 시각을 퍼뜨리기 위해 정쟁의 폐해를 과도하게 해석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처럼 한 사회의 건강함을 상징하는 정쟁이 심각한 해를 끼칠 때가 없지 않다. 바로 정쟁이 폭력으로 흐를 때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창기를 돌아보면 답이 나온다. 수많은 정치 세력들이 난무하던 시절이다. 일본의 지배를 벗어나 새 나라 건설에 매진하던 때다. 문제는 갑작스러운 해방과 함께 또 다른 외세인 미국과 소련의 등장이 이들 정치 세력 간 정쟁을 과격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결국, 당시 한반도는 어마어마한 폭력의 연쇄 작용이 정치판을 휩쓸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 출신 정치인들이 폭력적인 정쟁의 피해자로 목숨을 잃어야 했다. 백범 김구와 몽양 여운형이 대표적이다. 둘 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봐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경력과 경륜의 소유자들이다. 백범 김구가 보수, 몽양 여운형이 진보를 대표하며 새로운 정쟁의 씨앗을 뿌렸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은 통일과 함께 전쟁을 겪지 않고도 더욱 빠르게 강소국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정쟁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버려야 산다!
정쟁은 기본이다. 특히 폭력을 제거하고 건강한 경쟁 속에서 나라를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한 정쟁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아니 정치의 효능을 위해서도 견제와 경쟁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걸 부정하면 망국의 길이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정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지금 정치인들도 이러한 정쟁 속에서 성장해 왔다. 말과 글, 그리고 여론전으로 정치하는 것은 이 나라 사람들이 주인이라는 사실을 어김없이 보여준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대표하는 정치인을 선거로 뽑고 그들이 각자 지향하는 바를 위해 싸우는 과정은 아름다운 인간의 행동이지 나라를 좀먹는 행위가 아니다. 그렇기에 정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이제 제발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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