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다시 보는 국제사

전쟁은 대부분 망국의 조건일뿐...침략과 정벌에 소극적이었던 중국의 역사

by 통일동이 2026. 7. 16.
728x90

한 무제는 진시황 만큼이나 정복욕이 강한 군주였다. 전쟁광이었기에 한나라는 그의 제위 이후 어려워졌고 왕망의 반란으로 망하고 만다. 제미나이 AI 이미

 

 중국은 태생부터 확장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지리를 가졌다. 황하 일대에서 시작한 중국의 여러 왕조는 인근 민족들과의 투쟁 속에 점차 영토를 넓혀나가기 시작했다. 이는 외부의 침략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서쪽이 높은 산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평야인 중국땅의 특성상 당연한 일이다. 비슷한 사례가 러시아의 확장이다. 모스크바 인근의 소국이었던 러시아는 점점 영토를 넓혀나갈 수밖에 없었다. 산이나 산맥, 또는 큰 강과 같은 천혜의 장애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황하 위로는 산맥과 사막이 경계선이 됐고 그 아래로는 양자강이 자연스레 경계가 됐다. 이미 북적, 동이, 남만, 서융 등 황하와 양자강 사이에서 이민족과의 투쟁 끝에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진나라에 이르러 이들 지역을 통일하게 된다. 하지만 내부 반발은 어마어마했고 결국 진승과 오광이 시작한 중국 최초의 농민반란을 시작으로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이후 진이 망하고 한고조 유방이 한나라를 세우면서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 오늘날의 중국민족이 스스로를 부르는 한족 정체성이 생겨났다. 안으로의 통합이 마무리되자 무제 시대에 이르러 한나라는 처음으로 대규모 주변 정벌에 나섰다. 북쪽과 서쪽으로는 흉노, 동쪽으로는 조선, 남쪽으로는 월(베트남)에 대한 공격에 나선 것이다. '사기'를 집필한 사마천은 이런 정복전쟁에 대해 아무런 실익이 없고 오히려 해가 됐다는 비판을 남겼다. 실제 전쟁 비용을 대기 위해 각종 세금을 신설했고 그의 사후 100년이 안돼 한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한나라는 다시 유 씨가 새롭게 나라를 세운 후한을 거친 후 다시 안정을 찾는가 싶더니 농민반란으로 삼국시대를 통과해 선비, 돌궐 등 기존 북방민족들이 쳐들어오면서 북과 남의 경계가 확장됐다.

강남은 양자강 이남을 의미한다. 북방 유목민족에 나라를 빼앗긴 이후 이 지역이 새롭게 개발됐다. 제미나이 AI이미지

 

 북에서 내려온 유목민족 계통이 양자강 이북을 차지하고 본래 한족으로 통칭되던 이들은 양자강 이남으로 넘어가 새롭게 개척하면서 문명의 영역이 넓어졌다. 5호16국 시대로 불리는 때를 일컫는다. 이를 통일한 첫 번째 왕조가 수나라였고 이후 당나라에 이르러 서쪽 신장 위구르 지역까지 실크로드와 함께 확장됐다. 

 

 이후 여진족이 세운 금과 거란족이 건국한 요가 화북지방과 만주 일대를 기반으로 나라를 세우면서 다시 북방 지역에서도 점차 세력을 확장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존 한족은 왕조가 바뀌어도 영토 확장에 크게 뜻을 품지 않았다. 효율적이지 않은 데다 오히려 나라의 재정을 파탄 내 왕조 붕괴로 이어진 경험이 쌓여갔기 때문이다. 전한과 수나라가 대표적이었고 당나라 역시 비슷한 사례다. 

 

 명도 마찬가지로 대규모 군사활동을 자제했다. 색목인이자 이슬람교도였던 환관 정화의 대함대 역시 정벌이 아닌 과시 정도였다. 오히려 교역을 확대해 새로운 무역 강국으로 떠오를 수 있는 기회가 될 뻔했다는 게 역사적 평가다. 오히려 명의 멸망을 촉진한 것은 과도한 군사비 지출이었다. 바로 인접 조선에 대한 일본의 침략전쟁에 원군을 파견하면서 결국 수명을 단축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뒤를 이은 청은 여진족이 세운 나라다. 청은 오늘날 중국 영토 대부분을 확보한 나라다. 정벌 사업을 통해 자신들의 본거지인 만주와 연해주에 새롭게 얻은 명의 영토에 타이완, 티벳, 신장 위구르, 그리고 외몽골까지 확장했다. 그러나 이런 전성기를 거친 이후 청은 급속도로 약화됐다. 정복 전쟁의 폐해였다. 과도한 군사비 지출은 수십년 내에 해당 국가의 국력을 소진시키고 만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드러난 셈이다. 

 

 무엇보다 중국이 대부분의 역사에서 조공체제를 발명한 것 역시 이러한 영토 직접 확보보다 주변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패권국이 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중국은 평화로운 시기 속에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공산당이 일본의 침략에 이은 국공내전을 거쳐 대륙 전체를 차지한 후 문화대혁명과 같은 내란에 가까운 혼란기를 끝낸 후 미국과의 관계 개선, 자본주의 도입 등 개방정책을 통해 오늘날까지 50년 가까이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며 다시 한 번 굴기한 것 역시 이처럼 전쟁이나 영토 확장보다 가급적이면 평화를 유지하는 게 최선인 셈이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