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나라의 외교는 결국 그 나라 정치 지도자의 결정에 달려 있다. 하지만 이 결정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미루게 된다면 그 나라의 권위는 떨어지고 신뢰마저 잃게 되는 법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김정은과 우호적인 관계였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판문점에서 만났고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도 방문했다. 문제는 북한이 원하던 제재 해제에는 전혀 진척이 없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정부만이라도 제재 해제라는 과감한 결정을 당시 문재인 정부는 내리질 못했다. 미국이 반대한다는 핑계를 댔다.
그 대신 북미 회담을 주선했다. 결과는 성공적인 듯 보였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무척 가까워졌고 지금까지도 친하다고 자랑할 정도까지 관계 맺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더 이상 한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을 강력하게 이끌진 못했다. 당시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전쟁광이던 공화당 매파가 장악했던 시절이었다. 이들의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 해제와 북핵 개발 중단까지 협상으로 해결하는 데까지 나아가질 못했다. 그 때 대한민국 정부가 과감하게 치고 나갔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 지도자로서 그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앞선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처럼 과감하지 못했다는 점은 두고두고 뼈아픈 대목이 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면서 미국과 사전 조율을 했고 6.15 공동선언은 남북 정상 간 합의로 그 어떤 간섭도 없이 대외에 공표했다. 이후 동맹국들에 양해와 이해를 구하는 외교적인 활동을 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은 당시 일본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남북 화해에 전혀 훼방을 놓지 않도록 사전 작업을 해놓는 치밀한 모습도 보였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사사건건 일본과 부딪혔고 결국 극단적인 한일 갈등으로 나아가던 상황에서 남북 화해를 추진했고 당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사정없이 훼방을 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 매파에다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일본 총리까지 반대에 나서자 북미 관계 회복을 향한 여정에서 더 나아가질 못했다.

당연히 김정은은 문재인 정부를 지금까지 그 어떤 대한민국 정치 지도자보다 더 사악한 인물이라고 규정하기에 이른다. 북핵 개발을 중단시키고 북한의 군사력 강화 등도 지체시키면서 희망고문만 했기 때문이다. 군사독재 시절 박정희 대통령이나 전두환과 노태우 대통령도 북과 대화했고 어느 정도 서로를 향한 신뢰와 양보가 있었다. 김영삼 역시 초반 갈등 관계였다가 남북 정상회담에 나섰다가 김일성이 사망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김대중, 노무현은 남북관계를 점점 평화로 이끌었다가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다시 나빠졌다. 그런 상황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결정타를 날린 셈이 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계엄령 사태에서 보듯이 북한과의 국지전까지 고려했을 정도로 위험한 인물이었다. 김정은에게는 대한민국은 결코 상종해선 안될 나라로 각인되는 과정이 이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 화해 제스처를 보내도 김정은은 결코 믿지 못한다. 오히려 미국과의 관계 회복이 되면 대한민국은 따라오게 돼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중국을 믿지 말라던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의 유언도 있었으나 이제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활용하며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다행히 핵무기까지 개발한 상태라 미국과의 협상에서 더 우위에 놓인 상황이다. 당연히 대한민국과의 협상에는 전혀 관심이 없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이 모든 것은 순간적으로 미국 눈치를 보면서 안일하게 대응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과오가 되고 말았다. 대한민국 주적이 북한이라고 외치며 이를 검증하려는 이들이 있지만 정치 지도자는 주적과도 대화를 나누는 법이다. 박정희나 전두환이 그랬고 노태우 등 군부독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또 하나는 남북관계의 주도권은 미국이 아니라 정치 지도자들에게 있다. 박정희가 이후락을 북에 보냈을 때도 미국의 허락을 받진 않았을 것이다. 대신 언질은 줬을 것이다. 결정하고 실행하는 몫을 남의 눈치를 보다 빼앗겨선 안된다. 이명박과 박근혜, 두 전 대통령들은 대북관계에서는 역시 유능하질 못했다. 적대적인 모습과 행위로 일부 국민 지지를 얻고 미국이나 일본에 잘 보일 수 있겠지만 국익에는 도움이 안된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이들과 결국 다르질 못했다,
이제 대한민국은 선진국이고 그 누구도 함부로 보질 못할 정도의 군사 경제 강국이다. 그에 걸맞은 남북관계 주도권을 이번 정부는 꼭 행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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