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혐오가 퍼지는 시대다. 하지만 혐오는 늘 존재해왔던 것이다. 혐오는 폭력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혐오 대상이 권력 또는 힘이 생기면 풍자와 조롱으로도 이어진다. 자칫 잘못하면 되치기 당하거나 심하면 처벌 등 또다른 폭력으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풍자와 조롱도 폭력으로 인식되는 시대다.
20세기 말에만 해도 미국에서는 코미디언이 흑인을 대상으로 점점 차별의 폭력을 휘두를 수 없게 된 후 풍자와 조롱도 점차 차별과 혐오의 폭력이란 주장이 생겨났다. 이른바 PC주의다. 여성 역시 마찬가지다. 여성의 평등권이 사회적으로 널리 인정받고 존중받기 시작하자 풍자와 조롱 역시 지양해야 할 행위가 됐다.
그러나 혐오와 차별을 웃음으로마저 승화시키지 못하면서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감정의 배설은 결국 필요한 법이다. 그걸 틀어막으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반면 미국에서는 일부 학생들이 스포츠 경기와 함께 히스패닉 계통 상대팀을 향해 또띠야 빵을 던지는 풍자를 넘어선 폭력에 가까운 행태를 보였다. 결국 몰수패 당하고 강력한 처벌을 받았다. 최근 우리나라 배재고 야구팀이 광주일고 야구팀을 향한 스타벅스 응원이 6개월 출장 정지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강력하다. 왜 미국은 저 어린 학생들의 행동에 강경한 대응을 보였을까.
웃음의 미학은 풍자와 조롱 대상마저 웃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풍자와 조롱의 대상이 된 사람이나 집단은 감정이 상했는데 나머지만 웃는다면 폭력이 될 수밖에 없다. 누가 당신의 외모를 대놓고 비하하거나 조롱한다고 생각해봐라. 듣고 있던 다른 이들이 박장대소를 한다고 당신이 참을 수 있을까.
이처럼 풍자와 조롱은 웃음의 미학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스타벅스의 탱크주의 마케팅이 5월 18일 이뤄졌다. '탁치니 억'이라는 문구까지 집어넣었다. 전자는 광주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신군부가 탱크를 몰고 들어가 민주화를 외치던 시민을 학살했던 것을 연상시켰고 후자 역시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대학생 박종철에 대한 경찰의 고문치사 사건을 연상시킨다. 당시 경찰 수뇌부는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궤변으로 온 국민을 분노시켰다.
결국 해당 기업의 마케팅 부서에서는 뭔가 씌지 않고는 저런 짓을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정말 고의가 없다면 지금 이뤄지고 있는 경찰 수사는 단순 실수로 결론이 날 수 있다. 하지만 분노하거나 기분이 상한 상대가 있기 때문에 이 또한 법정에서는 또 다른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이제 함부로 저런 표현을 쓰기 어려워지는 상황이니 일베처럼 은근히 자신들만 아는 방식대로 마케팅을 기획했다면 유죄는 명백하다.
이런 논란이 있는 와중에 어린 학생들이라 해도 '스타벅스 가야지'를 외치며 응원했고 상대가 5.18 민주화 운동 당시 희생자가 나왔던 광주일고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미 이 논란을 알고 이걸 가지고 조롱을 하겠다는 의도가 명백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당시 경기 도중 광주일고 코치가 소리를 버럭 질렀을까.
어쨌든 대한민국 역시 비슷한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혐오와 차별을 풍자와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 과거처럼 그냥 넘어가질 않는 시대가 됐다. 시대 감수성의 변화라 할 수 있다. 자라나는 새세대가 이런 시대 감수성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몫이다.
독립전쟁과 6.25전쟁을 위해 순국한 선열들과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선열들을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 아닌, 성역으로 남기는 것이 우리 사회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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