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을 그렇게 혐오하는데 중국 공산당 최악의 극단 망상주의자들이었던 홍위병과 똑같다. 놀라울 정도로.
홍위병은 마오쩌뚱이 중국 공산혁명을 성공시킨 후 점차 경제 분야에서 무능함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다시 한 번 공고히 하기 위해 자신의 신화를 활용한 쿠데타인 문화대혁명을 수행한 젊은 청소년들로 구성됐다.
조국이 공산국가였던 상태로 태어난 이들 젊은 세대는 안 그래도 마오쩌뚱의 대약진 운동이 처절히 실패하면서 3000만~6000만명의 인민이 아사했던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다. 당시 중국 공산당 관료들은 아직 무능하던 시대였다.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난 마오쩌뚱은 권력을 놓지 않으려 했다. 마오쩌뚱은 중국에서는 신화와 같은 인물이었다. 그는 곧 선동에 나선다. 자본주의와 부르주아가 침투하고 있다는 마오쩌뚱의 한 마디에 당시 중국 공산당 정권에 반발하던 젊은 층들이 홍위병으로 변한다. 이들 중 권력자의 자녀로 구성된 보황파는 중국 전통 문화 파괴에 앞장 섰고 권력에서 멀어졌거나 하층 젊은이들은 조반파로 관료와 전문가 계층을 사정없이 공격했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중국 전통문화를 파괴한 이들 홍위병 때문에 수많은 전문가들이 죽거나 탈출하면서 중국의 발전은 정체됐고 소중한 문화유산은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마오쩌뚱이 자제하라고 했음에도 통제가 되지 않던 이들의 만행은 그야말로 천인공노할 수준이었고 비상식적이었다. 결국 정부는 이들을 탄압하고 중국 군대가 이들을 사살하면서 문화대혁명은 끝났다. 이 어마어마한 학살과 비상식적인 만행을 저지른 홍위병은 마오쩌뚱 어록을 끼고 다니며 순수한 공산주의 사상만을 강요했다. 마치 부정선거 음모론과 중국이 한국을 지배한다고 주장하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극단 망상주의자들과 전혀 차이가 없었다.
더 가까이에는 혐한에 빠져 자국의 보수정당인 자민당 의원들의 70%가 한국계라는 주장을 펼치던 일본 극단 망상주의자들과도 닮았다. 이제 이들은 그저 마구 외면하지 않으면 안되는 대상이다. 폭력이 아니라 이런 외면을 통해 고립시켜야 한다. 중국이나 일본도 결국 이들은 고립됐다. 여전히 문화대혁명 시절을 그리워 하는 홍위병 출신들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도 문화대혁명은 철저히 비판하고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 역시 혐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은 주류로부터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극단 망상주의자들 역시 그러한 수순에 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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