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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언론

사대주의의 기원 ⑤ 광해군과 인조, 그리고 서인이 주도한 사대주의

by 통일동이 2026.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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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나이 AI로 당시 서양식 화풍으로 그린 나선정벌.

 

 사림의 기원은 고려 말 신진사대부 중 정몽주처럼 고려의 존속을 주장하던 충성스러운 유학자들이었다. 조선 건국을 반대했던 이들 중 결국 조선왕조 초창기에 벼슬을 했던 인물들도 있지만 여전히 지방에서 후학을 양성하던 성리학자들이 꽤 많았고 이들이 조선 중기 이후 주류 정치 세력이 되는 사림의 기원이 된다. 

 

 왕조를 뒤엎을 만큼 백성의 삶을 우선시 하고 기득권 타파와 충효의 새로운 나라 건설에 앞장 섰던 조선의 건국 세력이나 사림 모두 이념이나 철학에서 크게 차이가 나진 않았다. 외교 역시 명과 친하게 지내고 원과는 거리를 둬야 당시 기득권 세력이던 권문세족을 견제할 수 있다는 생각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권력은 나눌 수 없는 법. 기존 조선 건국 세력들이 훈구파로 기득권을 누리게 되자 조선의 임금은 재야에 묻혀 있던 사림파를 등용해 이들을 우대하기 시작했다. 고려와 달리 과거라는 시험제도를 통해 고위관리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면서 사림의 중앙 정계 진출이 더욱 용이해졌다. 

 

 조선 중기부터 이들이 아예 주류 세력이 되면서 이들 사림 출신 권력층도 분화하기 시작한다. 사람 수는 늘어나지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벼슬 숫자는 정해져 있기에 이는 당연한 것이다. 동인과 서인의 붕당정치가 그렇게 시작됐다. 그러다 임진왜란 이후 동인이 힘을 얻게 됐다. 이 중 광해군을 등에 업은 북인이 정권을 잡는 듯했으나 광해군과 함께 몰락하고 서인을 주축으로 해서 동인 중 남아있던 남인이 남게 된다. 문제는 서인과 남인이 인조반정을 통해 광해군을 몰아내면서 내세운 명분이었다. 

 

 저번 글에서 언급했듯이 '재조지은'의 대상국인 명에 대한 의리와 광해군의 계모인 인목대비를 폐비시키고 배다른 동생 영창대군을 죽인 패륜을 바로잡겠다는 것이 바로 이들 세력의 명분이었다. 패륜은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하겠지만 명에 대한 의리 강조는 결국 조선을 호란으로 몰아넣고 만다. 힘도 없는 상황에서 친명반청을 외쳐댔으니 당연히 청이 가만히 있질 않았고 인조 집권기에만 두 차례나 전란이 일어났다. 특히 정묘호란에서는 광해군 폐위를 명분으로 침입했고 병자호란 때에는 아예 청 황제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와서 사실상 사대의 대상국을 바꾸도록 강요해 성공하게 된다. 

 

 당시 국제질서에서 명분과 의리는 지금과 달리 중요하던 시대이긴 했다. 오늘날의 판단 기준으로 볼 수 없다. 더구나 조선은 성리학이 공인 이념이자 철학이었다. 오늘날의 민주주의처럼 말이다. 선조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명분으로 내세운 명에 대한 의리 강조가 인조에게로도 이어지면서 변화하는 국제 질서에 대응할 여지를 크게 좁혀버리고 만 셈이다. 결국 병자호란에서 인조가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고 세자까지 청에 끌려갔지만 이런 명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질 못라게 된다. 

 

 명청 교체기에 대륙에서는 청이 명의 잔존세력을 끊임없이 제거해가고 있었다. 심지어 대만으로 이어진 정성공의 난도 그렇게 제압했기에 조선에서 명에 대한 의리의 조짐을 조금이라도 보였다가는 또 다시 전화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내부에서 분란이 일어났다. 인조는 볼모로 끌려간 소현세자가 풀려나 귀국한 후 오히려 세자가 청 지배층과 가까워진 것을 깨닫자 곧바로 견제에 들어갔다. 결국 세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했고 둘째가 세자에 올라 효종이 된다. 효종은 인조반정의 명분이었던 명에 대한 사대를 북벌정책으로 승화시켰다. 실제 국방력 강화에 힘쓴 효종은 조총부대를 양성하고 네덜란드인 하멜을 통해 서양식 화포 개량에 나서기도 했다.  

 

 어쨌든 소현세자의 죽음과 북벌은 어느새 조선의 새로운 발목 잡기나 다름없는 사대주의로 인한 것이었다. 소현세자는 안타깝게 사망했지만 북벌은 실질적인 전쟁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다만 청이 러시아와의 소총병들의 화력에 전투에서 밀리자 조선에 조총부대 지원을 요청해 전투에 승리하는 데 일조했다. 나선정벌이 바로 그 역사적 사건이다. 

 

 말뿐인 사대주의는 그렇게 명을 멸망시킨 원수 청을 위한 군사력으로 소모됐고 내부 권력투쟁에만 쓰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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