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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국제사

반복되는 미국의 실수④...러시아와 아시아를 무시하다 큰 코 다친 미국

by 통일동이 2026.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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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이미 아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제대로 수집하고 있었으나 오만함으로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제미나이 AI 이미지

 

 중국에 파견됐던 미국 군 정보요원들은 2차 세계대전 중 중국 내 여론의 향방과 실질적인 군사력 변화를 꾸준히 정보 수집해 객관적으로 분석했다. 이들은 미국이 일본을 대신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공산당과의 관계를 잘 풀어나가야 한다고 봤다. 

 

 실제 이들 요원은 전쟁 종식 후에도 중국에서 국민당 외에 공산당 인사들과도 친교를 맺고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미국 본토에서는 종전 직후부터 점점 소련과의 긴장 관계가 형성되자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특히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철저한 반공주의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윈스턴 처칠 총리 등 영국 측 설득도 주효했다. 처칠은 소련이 철의 장막을 치고 있다면서 냉전이 시작됐음을 가장 먼저 인식하고 미국에 이를 경고했다. 

 

 미국은 이 때도 영국의 노장 해군 출신 정치인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결국 미국은 제대로 공산주의에 대해 대비하지 않았고 뒤늦게 공산주의라면 덮어놓고 적대시하는 정책으로 일관하게 되면서 귀중한 기회를 다수 놓치게 됐다. 이런 적대 정책은 중국은 물론 일본, 한국, 베트남 등 이후 여러 국가에서 마찬가지였다. 미군정은 한반도에서 공산주의에 동조하지 않는 사회주의 계열 정치 세력과도 선을 그었고 베트남을 실질적으로 통치하면서 식민지를 되찾기 위해 군대를 동원한 프랑스와 전쟁 중이던 호치민이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호의를 무시했다. 호치민은 영국에 맞서 독립전쟁을 일으킨 미국을 베트남과 동일시하며 미국이 정의의 편에 설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을 갖고 꾸준히 트루먼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중국 역시 국민당에 편중된 지원으로 일관했다. 결국 중국 공산당의 반감을 사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도 공산당 등 좌파 정치세력이 국민들의 호응을 받자 적극적으로 개입해 과거 군국주의 인사들을 대거 복귀시키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현재 자민당은 이들의 후예다. 

 

 결국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효과적인 대응책은 덮어놓고 이들과의 대립이나 갈등이 아니라 시의적절하게 분열과 대립을 활용하거나 했으면 되는데 미국이 당시 상황에서 오만함을 버리지 못한 결과다. 하긴 2차 세계대전에서 유일하게 하와이를 제외하고는 영토 침공을 받지 않은 데다 전후 군사력은 물론 산업 등 경제적으로도 최강국이었던 탓이 크다. 하지만 전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미국이 한 것은 맞지만 미국 혼자 싸운 것도 아니고 이 전쟁에서 미국의 지원을 통해 강력한 군사력을 갖게 된 소련과 중국을 무시한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처칠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당시 소련을 전혀 경계하지 않았으며 힘이 있을 때 더 밀어붙이질 못했다. 그래서 빠르게 남하하는 소련군을 막기 위해 우리땅에 38도선을 경계로 하자는 제안으로 남북분단의 단초를 제공하고 말았다. 당시 소련은 미국이 혹시라도 동아시아에서 소련군을 철수하라고 할까봐 오히려 걱정하던 때였다. 오히려 미국이 대폭 양보하는 꼴이 됐다. 소련은 이후 만주와 동유럽에 대한 지배권 확보까지 일사천리로 자국 이익 확보에 발빠르게 움직였고 미국은 손놓고 이를 바라보기만 했다. 나중에서야 서유럽에 대한 경제 원조 등 마샬 계획 등을 개시해 서유럽으로 공산주의 물결이 넘어오는 것을 막기 바빴다. 

 

 아시아는 더 관심을 제대로 기울이지 않았다. 이미 다양한 객관적 정세 분석 정보들이 들어오고 있었지만 여전히 웬만하면 무시하는 미국 중앙정부였다. 그렇게 하나 둘 쌓인 미국의 어리숙함이 20세기 중반 이후 내내 결국 뒷통수로 돌아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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