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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국제사

반복되는 미국의 실수② ... 韓·中·日에 결국 당하고 마는 미국

by 통일동이 2026.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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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나이 이미지로 만든 페리 제독의 일본 개항 당시 모습 상상도

 

 미국은 캐나다와 함께 대서양과 태평양을 모두 접하고 있는 나라다. 동부 13개주가 처음 독립할 때만 해도 미국은 여전히 남아있던 캐나다 지역의 영국군을 쫓아낼 궁리를 했다. 그러다 다시 한 번 영국과 전쟁을 벌여 백악관까지 침탈에 불 타버리는 피해를 봤지만 가까스로 영국군을 몰아냈다. 점점 성장해가던 미국은 프랑스령이던 루이지애나를 사들이고 멕시코와의 전쟁으로 서부 지역에 새로운 땅을 얻게 됐다. 러시아로부터는 알래스카를 사들이면서 오늘날의 영토를 거의 갖춘 미국은 무엇보다 멕시코로부터 빼앗은 캘리포니아 지역을 통해 태평양 진출의 길이 활짝 열리게 됐다. 

 

 하와이와 필리핀 등에 대한 지배까지 이른 미국은 아시아에 관심을 돌리게 된다. 수천년 간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을 유지해온 중국에 가장 관심이 갔을 것이다. 특히 영국이 아편전쟁으로 노쇠한 청 제국을 무력화시켰다는 이야기도 들었을테니 뒤늦게라도 중국에 뛰어드는 것이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러나 아직 힘이 부족하다고 느낀 미국이다. 지팡구란 이름으로 황금의 나라로 알려졌다가 네덜란드와 포루투칼 등과 교역을 하던 일본의 존재를 알고 있던 미국은 시급히 동아시아에 깃발을 꽂고 싶었다. 그렇게 1853년 페리 제독이 이끄는 미국 함대가 일본 동경만 앞 바다에 나타났고 함포를 쏴서 500명의 일본인을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결국 일본은 미국을 달래고 1년의 시간을 달라고 했다. 이듬해 다시 페리 제독은 일본에 다시 나타났고 결국 일본은 강제로 개항하게 된다. 이제 본격적인 미국의 일본 식민화 과정이 펼쳐져야 했겠지만 1860년 남북전쟁으로 미국이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하면서 일본은 스스로 근대화에 나서 메이지유신을 거쳐 마침내 근대화된 국가로 나아가게 된다. 더구나 일본은 필리핀이나 하와이와 비교해도 큰 나라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일본은 살아남게 된다. 

 

 미국은 중국에도 진출하긴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 심지어 독일 등 기존 유럽 열강들에게는 왠지 모를 주눅이 들었다. 스페인을 멋지게 패배시키긴 했지만 노쇠한 데다 이미 힘을 잃은 국가였다. 필리핀과 쿠바 등 카리브해 지배권을 어느 정도 인정받은 미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 조선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금광도 많은 데다 뜯어갈 게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렇게 미국은 조선을 자신처럼 강제로 개항시킨 일본의 소개로 통상조약을 맺게 됐다. 하지만 여기도 경쟁국들이 너무 많았다. 미국은 단물만 빼먹고 고종황제가 가장 믿었던 나라였음에도 배신하고 일본과 밀약을 맺고 서로의 식민지를 인정한다는 가쓰라 태프트 조약을 체결한다. 

 

 오히려 미국은 점점 힘을 잃어가는 영국을 대신해 중국에서의 이권 균형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산동반도에서 일본에 쫓겨 패퇴한 독일을 일본이 대체하면서 그 영향력이 중국에서 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본에 압력을 조금씩 넣으며 중국에 눈독을 들이던 일본을 제어하려고 했다. 일본은 점점 커지는 야욕을 참지 못하고 마침내 기습 공격으로 미국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만다. 바로 진주만 공습이다. 하와이 진주만에 정박해 있던 미국의 대형 주력 함대가 모조리 격침당하고 수천명의 미 해군이 사망하고 만다. 

진주만 공습으로 100년이 안돼 미국은 일본에 거꾸로 당하고 만다. 제미나이 이미지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면서 미국은 유럽에서는 소련과 함께 독일에 대항하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는 홀로 일본군을 상대하게 됐다. 일본은 미국이 함대를 재건하는 동안 태평양은 물론 아시아 주요 유럽 식민지를 철저히 유린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미 미국을 공격하기 전에 중국과 전쟁 중이었다. 미국은 이 때부터 중국을 지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중국에 대한 이권 등을 어느 정도 고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 파견된 미국 요원들이 국민당보다 공산당을 더 신경 쓰고 이들과 관계를 잘 맺어놔야 한다는 보고를 무시하고 국민당에 집중했다. 결국 전쟁이 끝나고 중국 공산당은 이미 중국 전역의 농민들 마음을 얻어 내전을 벌여 국민당군을 대만으로 쫓아내고 말았다. 미국은 중국을 잃은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된다.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미군 병사들은 중국군으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됐고 베트남전쟁에서도 북베트남군에 대한 중국의 지원으로 전쟁에서의 우위 달성에도 실패하게 된다. 

국공내전은 공산당의 승리로 결말이 나고 미국은 중국에서의 모든 이해관계가 종료되고 만다. 제미나이 이미지

 

 한국은 어떨까. 일본에 넘겨버린 그 한국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던 미국은 해방 후에도 이 지역을 소련과 합의해서 38도선으로 나눴다. 남쪽에 대한 지원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재빠르게 나와버린 미국은 정작 북한군이 대한민국을 침략하자 뒤늦게 위기를 느끼게 된다. 이미 전쟁발발 1년 전인 1949년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을 대상으로 승리를 거두면서 아시아 지역에서 공산주의 확산 속도가 빨라진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이 전쟁에 개입하면서 미군은 초창기에 북한군을 무시했다가 지휘관이 포로로 잡히고 철저히 전투에서 패배하기도 했다. 낙동강까지 밀린 후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한동안 고전하기도 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군의 허를 찌르긴 했으나 이번에는 중국을 무시했다가 다시 한 번 중국군의 공격으로 큰 피해를 보게 된다. 

미국은 북한군을 무시했다가 초반부터 고전을 면치 못한다. 제미나이 이미지

 

 미국은 20세기 중반까지 한, 중, 일 세 나라에서 실패만 하는 듯보였다. 그나마 일본이 미국의 군수지원기지로 작용하고 이 지역 안정화를 위한 군 주둔지까지 제공해주는 덕을 보긴 했다. 대한민국 역시 중국 견제까지 노려볼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에 따라 현재까지 주한미군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두 나라 모두 미국을 위해 기지 사용료조차 받지 않고 있으니 미국은 수십년간 혜택을 누린 셈이다. 

 

 하지만 아시아에서 미국이 영향력을 유지할 순 있었어도 조금만 신경을 쓰지 않거나 정보 수집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늘 큰 코를 다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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