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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국제사

반복되는 미국의 실수① ... 지역패권주의의 출발

by 통일동이 2026.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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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먼로주의를 바탕으로 대외정책을 시작했다. 제미나이 AI이미지

 

 미국이 약소국이던 시절이 있었다. 백악관이 불타고 내전 중에는 외국의 개입으로 연방정부에 위기감이 감돌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미국이 자신의 힘을 자각한 후에도 미국인들은 늘 불안에 시달려왔다. 아마도 이는 권력자들이 즐겨 사용한 정치 기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늘 정의로움을 숭배해왔고 기독교 신앙에 입각한 선함을 내세워 왔다. 청교도들이 건너가 세운 나라답게 정교분리를 원칙으로 내세웠지만 이는 개신교 각 종파에 한했던 것일뿐이다. 어느 한 종파가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한 것인데 나중에 가톨릭 이민자들에게는 아예 해당되지 않았다. 겉으로는 차별이 없다고 했지만 건국 초는 물론, 그 이후에도 가톨릭 교도는 정계 진출조차 쉽지 않았다. 20세기 중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사실상 첫 가톨릭 교도 대통령이었다.  

 

 또한 미국은 끊임없이 원주민의 땅과 생명을 빼앗으며 영토를 확장해 왔다. 마치 주인이 없는 땅이었던 것처럼 서부로 진출한 미국의 역사는 잔혹한 학살극의 연장이었다. 19세기 서부에서 금이 발견되자 이러한 학살극은 더욱 잔인해졌고 극악해졌다. 심지어 백인들끼리도 이를 두고 비열한 범죄를 서슴지 않았다. 이걸 잘 포장해서 서부극 영화로 만들기도 한 미국이다. 

영국군은 19세기 초 미영전쟁 당시 미국 백악관마저 불태워 버렸다. 제미나이 AI 이미지

 

 자 이제 본격적인 대외정책으로 들어가보면 미국은 초창기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다시 한 번 영국과 전쟁을 벌였다가 일방적으로 당한 적이 있다. 그 때 영국군은 백악관에 불을 질렀고 홀라당 태워 버렸다. 남북전쟁 당시에도 영국의 개입에 잔뜩 긴장한 적도 있다. 이후 미국은 먼로 대통령 당시 새로운 외교 원칙을 제시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럽 국가들이 더 이상의 식민지 확장을 멈추라는 것이었다. 다만 미국은 유럽의 일에 상관하지 않을 것이며 기존 유럽의 아메리카 대륙 식민지도 존중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먼로주의 또는 먼로 독트린이라고 하는데 이후 미국 대외정책의 기본이 됐다. 먼로주의가 나올 당시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스페인마저 침공해 점령하면서 중남미 스페인 식민지에서 강력한 독립운동과 함께 신생 독립국이 생겨날 때였다. 미국으로서는 중남미 대부분의 지역에 식민지를 가진 스페인의 몰락 이후 또 다른 유럽 열강의 침략을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이 지역 패권국가로서의 미래도 보장받겠다는 계산으로 고립주의처럼 보이는 먼로주의를 체택한 것이다. 

남북전쟁을 거치며 미국은 점점 강한 나라로 거듭났다. 제미나이 AI 이미지

 

 미국의 두려움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다른 미 대륙 국가나 국가들이 유럽 등 외부 세력과 연합해 미국에 대항하는 것이다. 프랑스가 멕시코에 황제를 앉히는 일이 남북전쟁 당시 벌어졌지만 미국은 강력한 항의와 함께 멕시코 독립군과 연합해 프랑스군을 압박해 쫓아낸 이후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패권국으로서 미국은 먼로주의 하에서 늘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하지만 유럽의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이러한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는 서부 진출에 이어 태평양 너머 아시아 지역에까지 뻗어나가는 확장정책에서도 유지됐다. 다음 편에서는 아시아에서의 미국 대외정책을 살펴보면서 먼로주의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미국의 유럽 전쟁 개입에 대해서도 알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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