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은 일부 민주당 인사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여당에서만 활동해왔다. 자유당, 공화당, 민정당을 거쳐 민자당에서 신한국당을 이어 한나라당까지 이들은 주로 양지에서 따뜻한 볕만 쬐던 사람들이었다. 한 마디로 대한민국 기득권의 최고 수혜자들이었다. 이들은 경제를 잘 안다고 자부했고 안보의식이 투철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실제 국민들은 여당이 집권해야 나라가 안정된다는 믿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1997년 대선 결과는 그래서 대한민국 역사에서 6월 항쟁보다 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사상 처음으로 야당 대통령 후보가 당선된 것이다.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4수 끝에 마침내 김영삼 대통령의 뒤를 이어 민주당계 대통령이 됐다. 특히 김종필 총재가 이끌던 자민련과 연합해 간신히 이기긴 했지만 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일대 사건이었다.
대선 당시 대한민국은 IMF 구제금융을 받는 위치로 전락하고 있었을 만큼 당시 정부의 경제 무능은 극에 달한 상태였다. 더구나 북에 휴전선에서의 무력 시위를 여당쪽에서 몰래 요구했던 총풍 사건도 추후에 밝혀지면서 한나라당의 안보 의식에 대한 의구심까지 일었다.
졸지에 야당이 된 한나라당은 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 더욱 가관인 행태를 보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신임 국무총리로 김종필 자민련 총재를 기용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김종필 총리에 대한 인준안을 무려 6개월 가까이 끌었다. 그 덕분에 김종필 총리는 총리가 아니라 총리서리로 6개월간 일해야 했다. IMF 구제금융 사태로 나라 안팎의 위기가 상당하던 때였다. 그저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앗겼다는 이유로 이런 몽니를 부린 것이다.
이후에도 한나라당 이후 새누리당이 됐을 때도 자유한국당을 거쳐 현재의 국민의힘이 돼고서도 정권만 빼앗기면 새 정부 출범 초반부터 협치보다는 훼방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곤 했다. 야당이 정부 여당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도가 있다. 지금도 이들의 행태는 내란을 일으켜 정권을 빼앗긴 것부터 새롭게 민생을 챙기려는 정부 여당을 무조건 반대하고 헐뜯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당시 김종필 총리는 공화당을 창당하고 3공화국과 4공화국 당시 국무총리부터 총재까지 새누리당의 오랜 선배 정치인이었다.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고 한일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등 원죄도 있으나 나름 유능한 면모도 가진 정치인이어서 공과 과를 뚜렷하게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도 국무총리 인준안을 장장 6개월간 끌면서 모욕을 줬다. 이후 김종필이 김대중 대통령과 결별하고 나서 한나라당에서는 회유하려 했으나 그 때 배신감과 모욕감이 얼마나 심했으면 꿈쩍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드러나고 있지만 무능의 극치에 가까운 이 당은 내란에 국정난맥까지 도저히 보수정당이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이 못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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