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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국제사

동아시아 곳곳에 남은 해상 강국 백제의 흔적들...

by 통일동이 2024.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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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다. 특히 서해와 남해는 해안선이 복잡하지만 비교적 큰 강과 연결돼 있어 내륙으로 들어가기도 편하다. 이 강들을 끼고 평야가 형성되면서 농업에도 유리하다. 

 

 백제는 서해와 남해를 끼고 중국, 일본과 교류하면서 강력한 해상왕국으로 거듭났다. 

백제 무역선 조감도 한성백제박물관

 우리나라의 항해술은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연안 지역으로 축소됐다. 무역은 중국과 일본, 그리고 여진 등과 이뤄졌으나 대부분 조공무역으로 정부가 주도했다. 그러나 그 이전까지 한반도의 역사는 무역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중국과 일본에서 발굴된 유물을 통해 백제의 활발한 해외 무역과 교류를 알아볼 수 있다.

 고구려와 신라도 해외 무역에 적극적이었지만 해외로 적극 진출해서 현지에 정착촌 등 거점을 마련하고 고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교류한 나라도 백제가 두드러진다. 

 

 백제 유물은 중국과 일본에서 다수 발굴되곤 한다. 이러한 교류는 오늘날에도 살아있다. 일본 사찰의 모습에서 옛 백제 사찰 양식을 볼 수 있고 1000년 이상 존속되고 있는 사찰 건설 및 보수 기술을 보유한 기업 금강조 역시 초대 경영자가 백제인이다. 

 

 백제는 중국과도 활발하게 교류해 사신을 보내 조공의 뜻을 비친 후 철저하게 실리를 챙겼다. 

중국 사서에 기록된 백제 사신의 모습

 특히 중국 사서 '수서'의 '백제전'에는 백여 가구가 바다를 건넜다는 말로 백제란 국호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사실 고구려를 건국한 추모왕(주몽 또는 동명성왕)도 부여계로 졸본땅의 토착세력인 소서노와 결혼함으로써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다. 부여에 남겨두고 떠난 본부인의 아들 유리왕이 찾아옴에 따라 소서노는 추모왕과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 비류와 온조와 함께 고구려를 떠나 새로운 거주지를 찾게 된다. 소서노는 당시 무역으로 힘을 길러 졸본땅 일대를 지배하던 세력의 일원이었다. 중국 사서에서 나온 것처럼 바다를 건너 지금의 한강 일대에 정착한 게 합리적으로 보인다. 

 

 지금의 평안도와 황해도, 강원도 등 한반도 북부지역은 고구려가 아닌 적대국가들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바다를 통해 한강을 거슬러 와 부족국가 연맹체인 마한의 영역 중 위례성에 도읍한 후 세력을 점차 키우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백제 첫 수도 한성 모형과 상상도

 위례성은 조선시대 송파나루터 근처다. 한강 유역이고 상당히 안으로 들어와야 하지만 방어에도 유리하고 내륙 진출에도 용이한 지역인 것만은 분명하다. 또한 농사를 짓기에도 훌륭한 평야 지대이기도 하다. 

백제 교류 및 진출도

 이러한 바탕 위에 무역을 계속하면서 초반부터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면서 마한을 모두 정복해 버리고 고구려도 공격해 영토를 점차 넓혀 나간다. 산동과 요서 지역에도 진출해 이 지역에 거점을 마련해 중국 정부와도 활발하게 교류했다.  

 

 일본뿐만 아니라 나중에 신라방으로 알려진 중국 대륙 곳곳에 남아있는 곳은 이미 백제인들이 먼저 개척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중국 정부 안에서도 지배층에 편입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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