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키드 로우는 헤비메탈 신의 마지막 스타라 할 수 있다. 1989년 정식 싱글을 발표해 톱스타 자리에 올라섰지만 그 이전까지는 그렇고 그런 밴드였다.
특히 꽃미남 보컬 세바스찬 바흐가 영입되면서 놀라운 성공을 거두게 됐다. 하지만 음악적 측면에서는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인 데이브 세이보가 결성한 밴드다. 또 다른 기타리스트 스콧 힐이 '18 & Life'와 'I Remember You'와 같은 히트곡을 작곡했다. 그러니 어느 한 사람만의 밴드라고 할 순 없다.

그럼에도 190cm를 넘는 키에 금발까지 장착한 세바스찬 바흐가 3옥타브를 오르내리는 고음으로 노래를 뽑아내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스키드 로우에 열광했던 것도 사실이다.
1980년대 내내 머틀리 크루, 본조비, 신데렐라, LA건즈, 건즈앤로지즈 등 메탈 밴드들의 전성기가 이어진 가운데 뒤늦게 합류한 스키드 로우는 당시 상당히 신선했다. 필자가 중학생 시절이었던 때 빌보드 차트 10위권 안에 들어간 위의 두 곡 덕분에 스키드 로우 팬이 되고 말았다.

1991년 정식으로 데뷔 앨범인 'Slave To The Grind'를 발표했는데 이 앨범은 헤비메탈 사상 처음으로 데뷔앨범으로 빌보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해에 익스트림, 니르바나, 펄잼 등 그런지 록 또는 얼터너티브 록이 새로운 흐름세를 타고 곧이어 힙합이 록을 밀어내고 전 세계 음악시장을 휩쓸면서 헤비메탈은 퇴조하게 됐다.
1996년 세바스찬 바흐가 탈퇴당하면서 스키드 로우는 헤비메탈의 화려한 신을 뒤로 하고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음악 활동은 계속 이어졌지만 과거의 영광은 되돌리기 어렵게 됐다. 여러모로 아쉬우면서도 다시 들으면 힘이 넘치는 밴드다.
참고로 '스키드 로우'란 이름을 가진 밴드가 1960년대 아일랜드에 있었다. 이 밴드 멤버가 그 유명한 게리 무어여서 어마어마한 사용료를 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길거리 이름이라는 해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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